내가 처음 접한 콤부차
내가 콤부차를 처음 접한 건 2020년 여름, 이디야 커피에서였다.
커피를 즐기지 않는 나는 카페에 가면 늘 초코 프라페 같은 달달한 음료를 시켰다.
그날은 다이어트를 선언한지 얼마 되지 않을 때라, 마실 것을 고민하다가 새로운 메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콤부차.’ 생소한 이름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물었다.
“콤부차가 뭐지?”
“콤부차 몰라? 김태리 배우가 광고하는 거잖아. 다이어트 음료라고 하던데.”
‘다이어트’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주문을 눌렀다.
첫 모금. 혀끝을 감싸는 시큼한 맛. 어디선가 미끄러지듯 감도는 낯선 촉감. 이질적인 맛.
익숙지 않은 이 감각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결국 한 번 마셔보고, 더는 찾지 않았다.
다시만난, 콤부차라는 세계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5년 봄, 연남동의 티룸 ‘코코시에나’에서 콤부차를 다시 만났다.
테이블 위, 얇은 면보를 뒤집어쓴 유리병 안에 무언가 둥실 떠 있었다.
다즐링 콤부차를 메론과 함께 2차 발효했다는 설명을 보고는 처음엔 메론 조각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건 스코비라는, 콤부차를 발효시키는 살아있는 배양체였다.
샴페인 잔에 따른 콤부차가 내 앞에 놓였다.
얼음이 녹아들며 투명한 탄산이 반짝였고, 한 모금 머금자 입안 가득 청량한 기운이 퍼졌다.
멜론의 달콤함과 다즐링의 깊이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이디야에서 마셨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강하지 않은 신맛, 혀끝에 남는 불쾌한 질감도 없었다.
시중에 판매되는 콤부차는 살균된 제품으로 유통이 되고 있어 마시면 그 진짜 생 콤부차 맛을 모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
2차 발효를 통해 과일, 차, 다양한 재료와 조합하면 무궁무진한 풍미를 즐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매력적이였다.
‘나도 만들어볼까?’ 그날 밤, 나는 필수 재료인 스코비와 콤부차 원액을 주문했다.
콤부차의 재료는 간단하다.
차, 당, 균 . 세가지만 있으면 콤부차가 만들어진다.
스코비 균을 기다리는 동안 집에 있는 수 많은 차들을 곰곰히 살펴본다.
어떤 차로 할까?, 향이 가미된 차로 하면 더 맛있을까?
배송만을 기다리며 어떤 차로 할까 고민하며 차를 우려본다.
어쩌면 이번엔 제대로 콤부차라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첫 발효의 시작
배송이 왔다.
팩 안에 찰랑이는 콤부차 원액과 뽀얀 스코비가 들어있다.
콤부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차나무 잎을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차를 우릴 때 나오는 추출물들이 미생물이 발효하는 데 좋은 양분이 된다.
균들이 안정적으로 살기 좋은 환경을 찻물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액체 상태에서 세균이나 효모가 효과적으로 배양되고, 산소나 영양소 공급이 원활해서
산성도가 적정하게 유지되어 다른 균의 침입을 막는 역할도 해준다.
첫 시작은 기본부터 가자, 가향되지 않은 녹차를 선택했다.
아버님이 주신 강진 백련사 녹차다.
찻잎을 우리고 나니, 수색이 붉었다. 향도 녹차라기보단 홍차에 가까웠다.
맑고 투명한 색을 기대했건만, 병 안에는 깊은 붉은 빛이 맴돌았다.
아무렴 어때. 첫 도전에 신이 난다.
뜨거운 물에 10분간 차를 우린다.
콤부차의 핵심 두 번째는 당이다.
차가 우러난 물에 비정제 원당을 넣어 조심스레 저었다.
부드러운 소용돌이 속에서 설탕이 녹아들었다.
스코비는 생명체다. 온도가 40도를 넘으면 발효 속도가 느려지고, 60도를 넘으면 죽어버린다.
그러니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찻물이 충분히 식을 때까지.
26도. 병에 붙인 온도계가 적당한 숫자를 가리켰다.
이제, 스코비의 차례다.
손끝에 힘을 빼고, 하얀 배양체 스코비를 병에 조심스럽게 눌러 담아준다.
마지막으로 원액을 따라주고, 병 입구를 덮을 천을 찾아보았다.
새 면보를 준비했지만, 사용 전 세탁이 필요하다는 문구를 이제야 발견했다.
대신 키친타월을 꺼내 병 입구를 덮고 고무줄로 고정했다.
스코비는 잠잠했다.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 보였다,
부엌 한켠, 햇빛이 닿지 않는 곳에 조용히 자리를 잡아주었다.
기다림의 미학, 발효가 빚어낼 시간의 맛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차와 당과 균이 만나, 시간을 재료 삼아 어떤 맛을 빚어낼까?
스코비는 병 속에서 잔잔히 떠있다.
조용한 표정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당을 분해하고, 발효를 일으키고,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병 안에서는 기포가 일렁이고, 은은한 향이 퍼질 것이다.
어쩌면 아주 살짝 신내음이 감돌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눈으로는 다 볼 수 없지만, 시간과 발효는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첫 번째 시도는 어떤 맛이 날까.
과연 내가 기억하는 그 콤부차와 같을까, 아니면 전혀 다른 무언가가 탄생할까.
창가에 기대어 부푼 마음으로 찻잔을 들었다.
어쩌면, 이번엔 진짜 콤부차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