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비
스코비(SCOBY)는 콤부차 같은 발효 음료를 만들 때 꼭 필요한 존재이다.
이름은 다소 생소하지만, ‘Symbiotic Culture of Bacteria and Yeast’,
즉 박테리아와 효모의 공생 배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말랑하고 둥글며 젤리 같은 이 낯선 덩어리는, 알고 보면 수많은 미생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작은 생태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와 효모들이 한집살이를 하며, 서로 기대고 도우며 제 역할을 묵묵히 다해낸다.
그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조용히 제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
박테리아는 단맛의 설탕을 신맛이 도는 산(아세트산)으로 바꾸고, 효모는 그 설탕을 알코올(에탄올)과 탄산(이산화탄소)으로 바꾸는 일을 한다.
이 두 생명체가 공생하면서 콤부차를 발효시키고 독특한 풍미와 효능을 완성한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일하지만, 서로를 필요로 하고 함께할 때 비로소 결과가 생겨나는 그 모습은
어쩐지 사람 사는 이치와도 닮아 있는 듯하다.
차로 맺어진 인연
꽃차 수업을 처음 갔을 때, 나는 약간의 경계를 품고 있었다.
연세가 지긋한 어른들과의 거리, ‘배려’라는 말에 숨어 있는 당당한 무례함
그리고 늘 젊은 사람에게 먼저 요구되는 몸의 수고.
그 익숙한 그림 앞에서 나는 조심스럽고도 단단히 마음을 닫고 있었다.
예상대로, 수업엔 부모님 연배의 분들만 계셨다.
어색함을 숨기려 수업 시간에 더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안 그래도 돼요."
"우리가 언제 젊은 사람이랑 이렇게 말을 나눠보겠어요.
젊은 기운을 받으니깐 너무 좋다!"
어른들의 말엔 부담보다 반가움이 담겨 있었다.
어느새 나는 에너지로 환영받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젊음'이 아닌 ‘하나의 사람’으로 함께 어우러지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자격증 공부 때문에 서둘러 자리를 뜨려 하자
누군가는 고구마를 손에 꼭 쥐여주며 말했다.
"이거라도 먹고 가.점심 굶지 말고 공부해"
그 짧은 순간들, 그 작은 다정함이 오래 남는다.
처음엔 두려웠던 거리들이 차 한 잔 사이로 조금씩 줄어들고,
경계심은 따뜻한 눈빛 앞에서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틈을, 마음을, 그리고 온도를 알아갔다.
사람 사이도 결국엔 공생으로 우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각자 다른 결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고, 함께 어우러지고,
마침내 깊고 부드러운 맛을 만들어내는 것.
그날 이후, 나는 ‘세대’라는 단어보다
‘함께’라는 단어를 더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작엔,
조용하지만 진하게 피어오르던 차 한 잔이 있었다.
누군가는 꽃잎을 다듬고, 누군가는 줄기를 정리하고, 또 누군가는 손끝으로 물기를 털어낸다.
각자 맡은 재료들이 따로 덖여지다가, 어느 순간 하나로 합쳐져
비로소 온기와 향이 입혀진다.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맛.
서로가 있어야만 완성되는 조화.
둥둥 떠있는 스코비 속에서 소중한 인연들도 둥둥 떠오른다.
하마터면, 전부 버릴 뻔했다
콤부차를 담근 이튿날 아침.
아무 변화도 없던 병 속에서 어렴풋이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얀, 마치 알끈 같은 덩어리.
그 안에는 검은색 덩어리도 함께 보이고, 스코비의 표면에도 검은색 덩어리가 미묘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기포가 올라오는 모습은 생명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 이질적인 색감과 형태는 왠지 불길했다.
'곰팡이'...?
불안감에 조급해진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둔 『올 어바웃 콤부차』를 펼쳤다.
식품에는 언제나 그렇듯 곰팡이가 가장 곙계되는 대상이다.
오염된 콤부차나 스코비는 전원 폐기해야하기 때문에, 다시 스코비를 분양받아서 처음과정을 반복해야한다.
[곰팡이로 오인하기 쉬운 스코비의 모습]이라는 챕터.
책은 말한다.
간혹 모양이 특이하게 생성된 스코비나 효모 가닥이 깉은 색으로 떠 있는 경우 곰팡이로 혼동할 수 있다.
사실 곰팡이와 곰팡이가 아닌 것을 구분하기는 쉽다. 생성되는 위치나 모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곰팡이는 스코비의 윗면이나 산소와 만나는 부분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효모가닥은 촉촉하게 젖어 마치 갈색의 매생이처럼 보이는 반면 곰팡이는 털처럼 보송보송하다.
책을 읽고 사진도 비교해봤지만,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았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다음카페에 사진을 올렸다.
"곰팡이 맞는 것 같은데요?"
"이건 폐기해야 할 것 같아요."
댓글이 달릴수록 마음이 무너졌다.
너에게도 사진을 보여줬다.
"일단, 더 두고 봐보자"
책에서도 말하길, 구분이 어렵다면 일단 조금 더 지켜보라고 했다.
하지만 난 기다림에 약한 사람이다.
결국 “곰팡이다”라는 댓글 몇 개에 마음이 휘청였고, 곧바로 새로운 스코비를 주문해버렸다.
그리고는 “전문가가 필요해.”
책의 저자 이름을 검색했고, 그의 SNS를 찾아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의 책을 읽고 콤부차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병 안의 상태가 곰팡이인지 헷갈려서요.
혹시 사진을 봐주실 수 있을까요?”
조심스러운 문장 끝에 사진을 첨부해 보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알림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곰팡이가 아니라 효모 가닥이에요.
균 조성이 잘 되고 있어요. 병이 흔들리지 않게 잘 보관해주세요.
안도감이 몰려왔다.
“검정색 부분도 괜찮을까요?”
“네, 저 부분이 딱 효모 가닥이에요!”
하마터면 전부 버릴 뻔했다.
실패라 확신했던 그 순간은, 오히려 과정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단지,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눈과 시간이 필요했을 뿐.
콤부차에서 박테리아와 효모는 서로 다른 개체지만, 셀룰로오스를 매개로 연결되어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박테리아와 효모의 크기는 매우 작아 우리 눈에 볼 수 없지만, 셀룰로오스 덕분에 표면으로 올라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그건 일종의 신호다. '우리는 잘 되고 있어요'라는.
문득 우리 관계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각자의 삶을 살다, 스코비 하나로 메세지를 주고 받는 인연이라니.
속도도, 방식도 다르지만
필요한 순간에 마주하고, 그렇게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
박테리아와 효모처럼,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연결된 사이.
함께일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콤부차가 먼저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