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스코비, 어느덧 마더가 되다
처음엔 그저 조용히 배양액 위를 떠다니던 베이비 스코비.
마치 무심한 듯 부유하며 하루하루 자라나던 그 아이가, 어느새 무럭무럭 두꺼워지고 단단해져서
드디어 '마더 스코비'로 승격하는 날이 왔다.
가장 두꺼운 쪽은 1cm, 얇은 쪽도 0.7cm나 되는 제법 당당한 몸집을 가졌다.
"그래, 이 정도면 마더지!"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드디어 이삿날을 정했다.
사실 7일이면 발효가 충분히 끝나는 법이지만… 뭐랄까, 귀찮고 바쁜 일상 속에서 그냥 계속 미루게 됐달까?
어느새 18일째 되는 날, 마침내 용기를 내어 이사를 감행하게 되었다.
덮어두었던 키친타월을 조심스럽게 걷는 순간,
콧속을 강타하는 강렬한 시큼한 향이 퍼졌다.
“으… 양말 쉰내 같은데?”
하지만 그건 오히려 반가운 신호였다.
그 불쾌한 듯한 향은 사실 제대로 된 발효의 증거다.
이번 이삿집은 지난 겨울 내내 구중구포하듯 우려낸 진피병차로 결정했다.
귤껍질의 시트러스 향과 은은한 단맛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스코비가 정착하기 딱 좋은 보금자리였다.
설탕을 잘 녹인 차가운 찻물을 준비해 새 병에 붓고, 새로운 삶의 무대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사를 시작한다.
동그란 마더 스코비를 네모난 병에 발효시킨 결과, 이번에 새로 태어난 베이비 스코비는 마치
도형의 운명을 타고난 듯 네모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환경이 운명을 만든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혹시라도 찢어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온 신경을 손끝에 집중하며 스코비를 꺼냈다.
너무 조용해서, 더 신성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작은 생명체 하나를 다시금 옮겨주는 이 순간, 왠지 모르게 조심스러워지고 경건해진다.
그리고 고민이 시작되었다.
“마더 스코비는 이제 어디로 보내지…?”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번 병은 넉넉했고, 차도 충분했고, 무엇보다 함께 있으면 발효가 더 잘 된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결국 마더와 베이비는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
한 집, 두 세대, 공동 발효의 길이다.
나는 오늘도, 또 다른 생명체가 조용히 태어나길 기대해 본다.
이 작은 유리병 안에서 이어지는 생명 순환, 그 조용한 탄생을 말이다.
첫 콤부차 테이스팅 데이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첫 콤부차를 마시게 된 날이다.
기념적인 순간엔 뭐든 특별해 보인다.
“이건 이쁜 컵에 담아야지!”
반짝이는 유리컵에 한 모금 소중히 담았을 뿐인데,
마치 수고한 우리에게 주는 작은 축배 같았다.
향으로는 산미가 굉장할 줄 알았지만, 막상 마셔보니 매실음료 정도의 적당한 산미를 가졌다.
끝맛은 살짝 밍밍했지만, 입안에 감도는 얕은 알코올기는 마치 생막걸리를 처음 담가봤을 때 느꼈던 익숙한 감각을 떠올리게 했다.
속이 살짝 따끔한 건… 빈속에 마신 내 잘못이었다.
“2차 발효하면 더 맛있겠다.”
우리의 실험정신은 멈추지 않았다.
2차 발효는 딸기로 결정!
이번엔 딸기청으로 2차 발효를 해보기로 했다.
생과일보다는 청으로 만든 것이 발효가 잘 된다고 하여,
딸기를 깍둑썰기하고, 동량의 설탕을 넣어 고르게 잘 저어주며 청을 만들었다.
수분이 촉촉하게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르게 저어주고
딸기청이 완성되자
콤부차 병 속으로 살포시 넣어주었다.
피쉬-하고 터지는 탄산 소리는 미생물의 작은 환호 같았다.
잠깐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국자에 남은 딸기청을 1차 콤부차에 살짝 섞어 한 모금 마셔보았다.
상큼한 딸기향, 달달한 여운, 그리고 그 안에 녹아있는 발효의 묘미.
스포일러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이 작은 유리병 안에서 매일이 실험이고, 축제다
콤부차 만들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오늘은 어떤 재료를 넣어볼까, 이건 어떤 맛으로 변할까,
실패도 성공도 다 흥미롭고, 그 모든 과정이 기다려진다.
이 작은 유리병 안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잔치.
그 안엔 생명과 자연의 순환, 그리고 나의 일상이 고스란히 녹아든다.
마치 내 안의 작은 실험실 같기도 하고, 매일 조금씩 변화하는 자연 관찰일지 같기도 하다.
다음엔 어떤 생명체가, 어떤 맛으로 태어날까?
오늘도 나는 유리병 앞에 앉아, 조용히 상상해 본다.